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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하우스’로 유명한 건축가인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그가 최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7조선일보 라이프쇼’에서 ‘집 짓다, 담다, 살다(休)’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했다. 양 대표는 2000년 인기리에 방영된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국민건축가'라 별칭을 얻었다.

이번 강연에서 그는 내 집 짓기에 관심을 가진 예비 건축주들에게 실제 집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양 대표는 집을 짓기 전 ‘내가 원하는 집이 과연 어떤 집인가’라는 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최소한 기초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나와 내 가족의 동선(動線), 필요한 공간에 대한 파악이 완성돼야 좋은 집이 나온다는 것. 더 나아가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진 집을 보고 그대로 지어달라고 하는 건축주들이 더러 있어요. 지하실에 멋진 바(Bar)를 만들었죠. 1년에 한 번 내려갈까, 말까예요. 2층집을 지어놓고 2층에 안 올라가는 사람도 많아요. 방이 정말 여러 개 필요한지, 손님맞이를 대비해 거실을 넓게 만들어야 할지, 조경 공사는 어느 정도 규모로 해야할 지 등 어떤 집을 짓고 싶은 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원하는 집을 짓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구상을 잘 실현해 줄 건축가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집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여기는 건축가, 건축주와 소통을 잘 하는 건축가 등 건축가도 건축주만큼이나 여러 종류다. 내가 원하는 건축가는 어떤 유형인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초보자도 알기 쉬운 집짓기

양 대표는 기초적인 건축 용어와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폐율과 용적률 개념, 연면적은 무엇인지, 집의 구조는 어떤 유형이 있는지. 건축주가 잘 알면 공사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먼저 기초 공사에 들어가기 전 집주인이 살펴야할 것들이 많다. 직접 내 땅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측량해봐야 하고, 실제 측량한 대지가 도면과 맞아떨어지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후 지질 공사와 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건축주는 자신이 집 지을 곳의 크기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언스플래쉬 제공

양 대표는 구조, 설비, 배관, 전기 등 기초 공사에 비용을 가장 많이 들여야 한다고 했다. 내부 자재는 바꿀 수 있지만 기초 공사는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에는 콘크리트에 적합한 온도를 맞춰 작업해야 하자를 방지할 수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없는 ‘단열’

내부 인테리어를 진행할 때는 새집증후군 방지에 신경써야 한다. 새집증후군은 노약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접착제다. 이는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때 바로잡아야 한다. 양 대표는 벽면의 석고보드 공사를 할 때나 바닥재를 깔 때 친환경 접착제를 쓸 것을 권했다.


단열을 잘 하면 냉난방비가 덜 들어 이후 관리비를 절약할 수 있다. 단열재뿐만 아니라 창호의 크기와 성능을 잘 조절하는 것도 단열 작업 중 하나다. 창호에는 시스템창호, 알루미늄창호, PVC창호가 있다. 건축주가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PVC창호는 싸고 품질이 낮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양 대표는 “PVC창호는 단열 성능이 가장 높은 제품 중 하나”라고 했다.

이어 “알루미늄 창호는 디자인 때문에 선호도가 높고, 요즘은 알루미늄에 우드가 붙은 알우드창호도 나와 더욱 유려한 디자인을 뽐낸다”면서 “시스템창호는 이 모든 장점을 합쳐 놓은 자재여서 단연 우수한 제품”이라고 했다. 좋은 단열재와 적절한 창호의 사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살면서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양 대표는 벽면 마감에 대한 오해도 지적했다. 도장을 하거나 벽지를 바르는 등 벽면 마감에 쓰이는 다양한 자재가 있는데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도장은 모던한 느낌을 주고, 벽지는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것도 역시 오해”라며 “도장은 추후 덧칠을 해야 하고 벽지는 부분적으로 재도배를 할 수 있어 오히려 간편하다”고 했다.

방수(防水) 공사는 작업자가 아무리 꼼꼼히 공사해도 다른 공정의 잘못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집 주인이 물건을 들여놓다가 실수로 방수턱을 깨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최대한 집주인이 시공 현장을 잘 살피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천장에는 점검구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크게 해도 좋고 상체나 머리만 들어가도 된다. 그렇지만 꼭 만들어야 한다. 점검구가 없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집을 모두 뜯어야 한다. 보기 싫더라도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했다.

■“좋은 집 지으려면 비우고 즐겨라”

양 대표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을 소개했다. 가장 최근 작품은 강원도 양양의 ‘설해원’ 프로젝트. 휴양지의 산과 바다를 담기 위해 창을 크게 내고 자연 재료를 쓰도록 설계했다.


양 대표가 설악산과 동해를 끼고 있다고 해서 이름붙인 '설해원'. 나무와 돌 등 자연 소재를 사용했고 유리로 큰 창을 내 바깥 경치를 안에서 볼 수 있다. /러브하우스 제공


설해원 객실에 마련된 편백나무(히노끼) 욕조. 목욕을 즐기면서 골프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러브하우스 제공

양 대표는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 하다보면 원하던 것들을 못할 때가 많다. 욕심도 버려야 하는 일이 많아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집은 과정이 즐거운 집”이라고 강조했다.

[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④ 작지만 반전이 있는 파주 협소주택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가다가 쓰러져 뇌출혈로 입원한 80대 할머니, 매일 늦게까지 일하는 비정규직 아빠, 항상 혼자 집에 있는 중학생 사춘기 소녀가 사는 집이다.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무단 증축을 한 ‘ㅁ자’ 주택으로, 실제 등기상 면적이 43 ㎡(약 13평) 정도 되는 협소주택이다. 진입도로 폭이 4m 이하여서 신축은 불가능했고 개축 방식으로 진행했다. 면적도 지금 그대로, 높이도 지금 그대로 적용해야 했다. 43 ㎡ 규모지만 세 식구가 살아갈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설계를 시작했다.


전면 담장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답답한 느낌의 골목길을 만들지 않고,좁은 집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사진= 이남선 작가



주택의 단면도. a 거실·주방, b 딸 방, c 출입구, d 다락방, e 욕실, f 외부데크, g 거실.주방, h 출입구. /와이그룹


주택의 평면도. a 출입구, b 욕실, c 거실·주방, d 딸 방, e 할머니방, f 외부 퍼걸러, e 다락방. /와이그룹


■공간 내부에 또 다른 공간

이 집은 ‘눈금’이라는 의미의 ‘그리드(grid)’ 개념을 적용해1cm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정교하게 설계했다. 규모는 정말 작지만, 어쩌면 가장 풍요로운 공간 구성을 시도한 집이라고 할 만하다.

‘부피 안의 부피’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나의 공간 안에 작은 공간(다락)이 있고, 거실 공간 밖으로 또 다른 공간(pergola)이 나오도록 설계했다. 퍼걸러는 옥외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설치하는 기둥과 선반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외부 퍼걸러. 블라인드를 열면 테라스처럼 쓸 수 있다. /사진=이남선 작가
2D 공간이 아닌 입방체 공간을 고려했고, 다락은 부피를 이용한 전형적인 설계 기법을 적용했다. 딸을 위해 비밀 요새 같은 공간을 계획했는데, 화장실 바닥 레벨을 조금 낮춰 최소한의 높이로 만들고 난 뒤 그 위로 다락을 들였다.

마당에는 루프 시스템이 설치된 퍼걸러 공간, 딸 방 앞으로 전용 테라스 공간, 주방 앞으로는 다용도 공간 등 다양한 외부 공간을 조성했다.

루프 시스템은 오즈텍의 테라 시스템을 적용했다. 폭 7M X 돌출 3.6M 제품으로, 최고 풍속 117m/s, 적설량 30cm까지 견딜 수 있다. 총 비용은 제품, 설치, 운송비 등을 포함해 2000만원대이다. 다만, 현장상황과 제품디자인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다. 왼쪽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닫히는 모습. /사진= 이남선 작가

루프 시스템을 이용해 차양막을 모두 닫은 모습. /사진= 이남선 작가


■다락과 포켓 테라스의 반전

같은 43㎡도 아파트와 주택은 다르다. 주택은 외부 공간을 이용해 내부 공간의 확장성을 꾀할 수 있어 실제로 주택 43㎡에서는 훨씬 더 넓은 면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거실 앞 퍼걸러 공간은 또 다른 거실의 연장선이자 다양한 목적을 지닌 공간이 된다. 루프 시스템을 이용해 차양막을 만들어 외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주방에서 외부를 바라본 모습. /사진= 이남선 작가

거실 주방 공간의 수납장을 내리면 감춰져 있던 침대가 내려온다. 아빠는 할머니와 딸에게 방을 양보했지만 결과적으로 흡족해 했다. 침대는 '오른'의 폴딩베드로 슈퍼싱글 사이즈 소비자가는 218만원. /사진= 이남선 작가
현관문 옆에 조성한 작은 포켓 테라스는 면적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주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딸 방 옆 외부 공간도 동일한 개념이다. 이렇게 다양한 외부 접지 공간은 주택에 풍요로움을 선사하고 좁은 면적의 집이지만 두 배 이상 공간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다락방은 이 집의 또 다른 반전 공간이다. 한창 비밀이 많은 나이인 딸을 위한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락방 불을 끄면 알전구에 불이 들어오는데, 벽에 빔프로젝터를 쏘아 영화도 볼 수 있게 했다. 이 다락방은 화장실 바닥과 층고를 낮추면서 생긴 공중 공간을 활용한 것인데 앞으로 이 방에서 소녀가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딸을 위해 만든 비밀요새 같은 다락. /사진=이남선 작가






[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①강화도 아이들이 즐거운 집


투시형 담장과 외벽을 통해 집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도록 설계한 강화도 집. /사진= 이남선 작가

인천 강화도의 한적한 마을에 사는 50대 부부는 11살 아들, 6살 딸을 두고 있다. 아빠는 일용직으로 일하고, 엄마는 외할머니 병간호에 집을 자주 비웠다. 남매가 텅 빈 집을 지켰다. 집은 불안해 보였다. 구조가 튼튼하지 않고 습기가 쉽게 찼고 단열에도 문제가 있었다.

겨울에는 춥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 그래서 가족 건강을 지킬수 있고 아이들이 편안한 집을 짓기로 했다. 특히, 동네 친구가 없어 하루종일 집에서 보내는 남매에게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걸 설계 목표로 잡았다.



철거 전 집의 모습


새로 지은 집의 단면도. a 안방, b 현관 안 복도, c 주방/거실, d 출입구. /와이그룹


새로 지은 집의 평면도. a 안방, b 발코니, c 욕실, d 아들 방, e 거실, f 식탁, g 주방, h 딸 방, i 붙박이장, j 놀이방, k 공부장, l 발코니, m 보일러실. /와이그룹


[땅 생긴 대로 집 짓기]

대지 북쪽에 낮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 레벨 차이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굳이 평평하게 땅을 고르지 않았고, 높은 뒤편에는 좀 더 색다른 공간을 계획하고, 낮은 곳은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곳으로 구분하면 되겠다 싶었다. 남측으로는 낮고 북측에서 보았을 때는 약간 높은 경사 지붕을 택했다. 지형에 순응하는 집은 전통건축 배치 경관에서 인용했다.


예전 집에 있던 판석을 입구에 깔고, 시간의 흔적이 지워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보탰다. /사진= 이남선 작가


투시형 담장은 집 안에서 밖을 볼 수 있으면서도 외부의 시선을 차단해준다. /사진= 이남선 작가


[투시형 담장]

밖에서 보면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 보면 밖이 잘 보이는 공간 개념을 적용했다. 외부 공간이지만 입구 현관은 투시형 담장을 도입해 중성적 공간이 되어 내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투시형 담장은 집 안에서 충분히 밖을 조망할 수 있으면서도 남향 채광 면적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주고 프라이버시(사생활)도 지켜준다.



외벽은 차양기능과 외풍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사진= 이남선 작가


[가벽]

외벽 바깥으로 가벽을 하나 더 세웠다. 더블 레이어드 월(double layered wall)로 생긴 잉여 공간이다. 여름에는 차양 효과, 겨울에는 단열 효과를 높여주는 이 공간에 테라스 기능까지 넣었다. 이런 벽 하나를 더 세우면 바람을 막아 겨울에 보온 효과가 높다. 여름에는 차양 기능을 하는 벽 하나가 얼마나 집을 시원하게 해 주는지 모른다. 바닥은 우드 덱(deck)을 사용하지 않고 특수 모르타르(mortar) 소재를 사용해 디자인을 강조했다.



[틈의 건축]


두 매스를 반 층 올리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 형식으로 수직 동선을 만들어 연결했다. 공간의 상부나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상층과 하층을 모두 공간으로 쓰게 하는 메자닌 플로어(mezzanine fl­oor) 개념을 적용, 별도의공간을 만들어 남매의 전용 놀이공간으로 구성했다. 매스와 매스 사이에는 틈새 공간이 있고 채광창을 두어 안에서도 볼 수 있고 밖에서도 계단의 공간을 볼 수 있다


남매방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조망창을 달았다. /사진= 이남선 작가


[창호 디자인]

키즈룸에서 보면 상부에 창을 내 남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게 했다. 이 창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조망창 기능도 한다. 창호들은 단열 효과가 매우 뛰어난 PVC 이중 창호를 사용했다. 알루미늄보다 PVC가 단열 효과가 더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급 소재를 지향하는 분위기 탓에 PVC가 서러움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집안에 길처럼 동선을 짜서 조그만 마을이 되도록 했다. /사진= 이남선 작가


[내부의 길]

집안에 길을 만들었다. 밖에서부터 시작해 안에도 길이 있는 건축을 시도한 것은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하나의 조그만 마을이 되기도 하고 자아실현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도 바람 길을 열어 주는 공간은 집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자 오랫동안 집이 숨 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격거리]

도로에서 여유 있게 물러선 배치는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 심리적 풍요로움을 위해 계획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네에도 여유로운 풍경을 선사하게 됐다.


경사 지붕으로 높은 층고의 남매방을 꾸몄다. /사진= 이남선 작가

[경사지붕]

집 뒤편에 있는 K룸에는 경사지붕을 적용했다. 투시도 기법을 활용해 원근감을 주면서 집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풍광에 거슬리지 않게 앉힌 이 경사지붕은 내부에도 그대로 적용해 높은 층고의 공간을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⑥ 서울 제기동 ‘빛이 드는 집’

오랜 세월 한약재 배달 일을 하던 아빠는 이제 은퇴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데 다리를 다쳐 제대로 뼈가 아물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딸은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한다.

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전형적인 개량 한옥 형태를 띤 양옥이었다. 원래는 햇볕이 참 잘 드는 건강한 주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점점 빛이 들지 않고 주택은 병들기 시작했다. 집이 아프면 그곳에 사는 사람도 함께 아프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집을 다시 건강한 집으로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L'자 형태의 개량한옥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만들었다. /사진=이남선 작가



평면도. a 주방, b 보일러실, c 거실, d 욕실, e 방1, f 방2. /와이그룹



리모델링하기 전 제기동 주택 모습. /러브하우스

진입도로 문제 때문에 신축이 아닌 대수선으로 해야 했다. 대수선은 건축물 기둥과 보, 내력벽, 주계단 등 주요 자재와 구조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외부 형태를 수선하거나 변경, 증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건축물의 면적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롭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약 60㎡ (18평)~66㎡(20평) 규모로 대수선을 통해 이 가족에게 밝고 희망 가득한 집을 만들어 돌려주고 싶었다.

■“채광과 프라이버시 동시에 확보”

제기동 집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을 수 없는 영구 음영(perpetual shadow) 집이었다. 천창을 만들고 남측과 동측에 최대한 넓은 개구부를 두어 빛을 오랜 시간 담아 놓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를 위해 외부형 슬라이딩 가림막 문을 설치했다. 다른 집들이 사방을 에워싼 고밀집 지역에 자리한 도심형 주거의 핵심은 결국 채광과 프라이버시 확보다. 결국 제기동 집을 짓는 작업은 ‘빛과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천장에 큰 창을 내 햇볕을 확보했다. /사진=이남선 작가

마당이 있는 ‘ㄴ’자 형태 집은 역시 한옥 공간 구성으로 귀결했다. 경사 지붕의 형태를 고쳐 남쪽으로 사면을 만들어 처마가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했다. 처마 아래에는 대청마루를 뒀다. 경사 램프를 활용해 높은 단차를 극복했다. 입구에 면한 방은 출입문 형태의 창을 크게 만들어 사랑채 공간으로 만들었다. 혹시 모를 2세대 주거를 위한 계획과 생계를 위한 임차도 고려했다.


환기가 잘 된다는 한옥의 장점을 살려 북측과 서측으로도 창을 내 십자형으로 환기될 수 있게 만들었다. 제기동 집은 한옥 형태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치수 감각, 공간 감각을 잘 계승해서 구현하고자 했다.




마당의 벤치역할을 하는 툇마루. 거실창호는 한화홈샤시 마스터 이중창를 썼다. 가격은 (4,650mmX2,300mm) 300만원대, (3,170mmX2,300mm) 200만원대. 주방발코니에는 'Brewell700'을 사용했다. 이 제품은 공기 중의 유해물질을 최대 90%까지 차단하고, 창문을 열지 않고도 실내공기를 환기할 수 있다. 가격은 (2,370mmX2,300mm) 300만원대 (※ 시공비 포함). /사진= 이남선 작가

■한옥 정서를 그대로 살렸다

별도의 출입문이나 현관 없이 마당이나 툇마루를 통해 진입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예전에는 집에 구들을 설치하고 방을 땅으로부터 조금 띄워서 습기를 차단하는 지혜가 있었다. 그래서 제기동 집도 대수선을 통해 기존 바닥을 보강하고 난방시설은 다시 설치했다. 구조 보강으로 자연스럽게 바닥을 높여 한옥의 정서를 그대로 살렸다.

마당과 집 사이에 툇마루를 설치해 마당 벤치이자 현관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게 했다. 툇마루는 한옥에서 느끼는 매개 공간인 셈이다. 한옥의 방은 다목적이다. 한 칸짜리 방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중간 문을 닫으면 독립적인 방이 되기도 한다. 방과 거실, 작업 공간 등 다양한 목적형 공간으로 변신한다. 제기동 집은 이런 한옥의 유연한 형태를 계승해 주방 거실 공간과 연결될 다목적 공간을 마련했다. 중간 문을 닫아 침실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부엌과 다이닝룸. 채광을 위해 천창을 냈다. 이때 집안이 외부에 노출되는 단점은 미러 필름을 붙여 해결했다. /사진=이남선 작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지가 음식 보관 장소와 창고로 기능했고, 때로는 작업 공간으로 이용됐다. 이미 한옥에는 수직으로 확장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측 다목적 공간을 활용해 한옥의 수직 확장 개념을 도입했다. 다락을 설치해 좁은 집에서 창고 기능과 다양한 목적형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채광을 위해 경사 지붕을 적용했을 때 만들어지는 잉여 공간이 가족실 위에 위치한 다락이 됐다.

■구조 보강하고 공간 효율 높인 리모델링

제기동 집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았다. 심지어 이웃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집이었다. 그래서 대수선의 초점은 안전한 집짓기에서 출발해야 했다. 결국 구조 보강 작업 때문에 공사가 많이 늦어졌다. 구조 보강을 하고 다시 벽을 만들면서 채광창을 많이 만들어 집이 ‘튼튼해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문을 열면 거실이 되고 닫으면 독립된 공간으로 쓸 수 있다.
더울 때 문을 들어 올려 천장에 고정시킨 후 방과 마루를 통하게 하는 한옥의 '들어열개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러브하우스


위에서 바라본 제기동 주택 전경. /사진=이남선 작가

과거 제기동 집은 바닥이 무너지고 난방 효과가 미약해 항상 냉골이었다. 결국 대수선 작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바닥 공사까지 감행했다. 다시 난방을 설치하고 구조를 올릴 토대를 만들기 위해 바닥 보강 공사까지 했다.

대수선의 장점은 동일한 면적 안에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점을 활용해 마당에 있던 장독대와 화장실 창고를 철거했다. 그 면적을 주방 다용도실로 바꿔 집의 효율을 끌어올렸다. 수평으로 확장하고 이동해 대수선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이 때문에 더욱 넓어진 마당은 또 다른 거실의 연장선이자 시간성을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주방과 연결된 거실은 다양한 목적을 지닌 공간이 된다. 거실에 한옥 대청마루 개념을 적용했다. 이 공간은 현관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식사나 가족실 공간으로 사용되고, 벽이 만들어지면 잠자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